2018년 8월 27일 쓰여진 기사입니다
고교야구에서 에이스 투수의 혹사는 언제나 큰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학창 시절 무리한 등판으로 일부 투수들은 프로 진출 이후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에이스의 잔혹사가 반복됐다.
지난 21일, 일본 아마추어 야구의 최대 축제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가 막을 내렸다. 일명 ‘고시엔(甲子園)’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역대 100번째를 맞은 올해 북오사카 대표 오사카 토인 고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고독한 에이스, 요시다 코세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인물은 준우승팀 가나아시 농업 고교의 요시다 코세이다. 요시다는 가나아시 농고의 에이스로 팀을 고시엔 결승까지 이끈 1등 공신이다. 요시다는 아키타현 지역 예선부터 본선 결승까지 팀의 11경기를 모두 선발 등판했다. 그중 마지막 결승전을 제외하고 10경기는 모두 완투하며 팀의 모든 이닝을 책임졌다.
그의 등판일지를 보면 웬만한 혹사는 우스울 정도다. 우선 지역 예선 5경기부터 살펴보자. 요시다는 7월 15일 2회전 경기부터 24일 결승까지 10일 동안 5경기를 나왔다. 이중 준준결승만 콜드게임으로 7이닝을 소화했을 뿐 모든 경기를 완투했다. 등판 사이 휴식일은 2-1-2-0일로 충분한 휴식일을 보장받지 못했다. 또한 매 경기 평균 약 127구를 던졌다.
고시엔으로 오면 더욱 심각하다. 1회전과 2회전 사이에선 경기 일정상 5일의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일정이 촉박해지면서 요시다에게 휴식일은 없다시피 했다. 3회전부터 결승까지는 5일 동안 4경기를 선발 등판하며 투혼을 불살랐다. 고된 일정 속에서도 요시다는 최고 구속 150km의 공을 뿌리며 위력을 뽐냈다. 결승에서도 147km의 공을 던졌지만 결국 누적된 피로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번 대회에서 총 11경기 93이닝 동안 1517개의 공이 요시다의 손을 떠나갔다. 경기당 140개 가까이 되는 공을 던지면서 요시다는 팀의 모든 승리를 이끌었다. 한 경기에 탈삼진을 13번 이상 기록한 것도 6번이었다. 그 덕분에 팀은 제1회 대회 이후 103년 만에 아키타현에 결승을 선물했고 요시다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휴식이 필요한 요시다는 또다시 U-18 대표팀으로 떠난다.
반복되는 에이스 잔혹사
이와 같은 혹사는 비단 요시다 만의 일이 아니다. 고시엔의 참가한 대부분의 학교가 투수 한, 두 명에 의존해 빡빡한 경기 일정을 소화했다.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오사카 토인 역시 혹사 논란은 피해갈 수 없었다.
오사카 토인의 에이스 카키기 렌은 고시엔에서 지난 6일부터 결승전인 21일까지 6경기에 나와 36이닝을 소화했다. 일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대회 초반에는 적당한 휴식일을 부여받았지만 막바지에는 2경기 연속 9이닝을 던지는 등 무리하게 등판했다. 물론 요시다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이다. 하지만 무더운 한여름에 이런 투구는 투수에게 분명 독이 될 것이다.
에이스의 역투가 대회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시엔의 열기가 이 학생들의 선수 생명을 책임져 주진 않는다. 선수들의 건강, 그리고 남은 인생을 위해서라도 혹사 문제는 바꿔 나가야 한다. 이를 감독들이 자발적으로 바꿔 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분명 규정을 통해 손볼 필요가 있다.
한국 고교야구의 현주소는?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한국 역시 고교야구 투수들의 혹사는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이를 위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올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투구수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이제 고등학교 투수들이 하루에 최대 던질 수 있는 공은 105개로 제한됐다(단, 노히터와 퍼펙트 진행 상황은 제외). 또한 투수가 던진 공의 개수에 따라 76구 이상을 던지면 4일, 61~75구는 3일, 46~60구는 2일, 31~45구는 하루를 무조건 쉬어야 한다. 과거 한국에서 혹사로 논란이 되었던 이형종, 변진수와 같은 사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반발 역시 존재한다. 이 규정이 선수층이 두터운 대도시의 강팀들에게 유리할 뿐 가나아시 농고처럼 한, 두 명의 투수에게 의존적인 지방 학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준 이하의 투수들이 자주 나와 경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언제나 한 규정이 생기면 그에 대한 부작용은 나오기 마련이다. 현장에서 당장 눈앞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앞날을, 나아가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변화가 없다면 에이스의 잔혹사는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열정과 투혼이라는 명분 아래 선수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나와선 안 된다.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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